20240127 철도회관과 길위의 김대중
몇 달 째 주말도 계속 바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당직자들이 그렇다. 선거를 앞두고 여러일이 동시에 병행되는데, 정당으로서 해야할 사무행정은 또 그것대로 쌓이니 야근, 야근, 야근이다.
그렇게 오늘은 서울녹색당의 대의원대회가 있는 날이다. 녹색당이 추첨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그것을 10년 넘는 시간동안 실천하는 대표적 기구가 대의원대회다. 나는 대의원으로 추첨 되지는 못했으나 선거에 출마한 후보라는 이유 덕분에 인사를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우리는 정당이지만 국회는 쓸 수 없으니, 장소 하나 빌리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늘 용산의 철도회관이 대관에 너그러운 편이다. 이번 서울녹색당 대의원대회도 그곳에서 열린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일정을 정리하다 문득 최근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영화가 개봉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곤 용산역 근처의 영화관 상영시간표를 확인했다. 늦잠을 포기하면, 대의원대회 시작 30분 전에 끝나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곧장 예매 했다.
영화는 인상적이었다.
‘김대중’ 이라는 사람을 모르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텐데, 더 알아갈 수 있다는 김대중이 있다는 점에서 묘한 위로를 느꼈다. 한편 관객인 나에겐 스포일러라는 것이 있을 수없는 그의 인생과 정치 여정엔, 차마 살피지 못한, 예기치 못한 일들이 있었고, 그것을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잔잔히 웃고 울며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작은 사치로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 김대중 대통령이 웃고 우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 나올때, 참 솔직하게 표정을 짓는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는데 16년만에 광주를 찾은 김대중 대통령이 우는 모습도 그러했다. 까만 스크린에 ‘길위의 김대중’이 한번 더 떠오르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생전 김대중 대통령이 그토록 외치고, 지키며, 키우고자 했던 민주주의는 2024년 현재 어떤 모양과 모습일까 잠시 생각했다. 바깥으로 나와 용산역에서 우연히 반가운 당원을 만나 함께 두런두런 발걸음을 옮겼다. 당원들이 모이고 있다.
도착한 철도회관은 고요했다.
대의원 당원들이 자리를 채워앉고, 나는 각 모둠을 찾아가 인사를 나눴다. ‘가장 보통의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으로 모이는 녹색당 대의원대회는 준비가 쉽지 않다. 또한 이번 대의원대회는 녹색당이 처음으로 추진하는 선거연합정당, 처음으로 도전했던 보궐선거에 대한 논의와 평가가 안건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 안건들을 추첨제 대의원들에게 설명하고 논의 부칠 서울시당 위원장이 나였다면, 무척 긴장 되었을테다.
인사차례가 되어, 단상에 올라 당원들의 눈을 보니, 사무처장이 여러차례 강조해 짧게 준비했던 인사말에 역시나 한마디를 더 덧붙이고 싶어졌다. 전략지역 후보자로서, 출마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당연한 말과 함께 오늘 철도회관으로 걸음한 대의원 당원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겁지만, 한편으로 설레고, 반가웠을지를 나누었다. 그 복잡한 심정으로 여전히 당을 위해 충분히 토론하고 논쟁할 당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우애와 낙관. 녹색당 강령 전문의 정신이자 나는 우리 당원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라 생각한다. 그 마음으로 만들어가는 민주주의는 울퉁불퉁 하더라도 하나의 길이 될 것이란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서로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되길 바라며 회관을 나왔다.
2024년 1월 28일
두번째 김혜미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