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30 빨래가 잘 마르는 집
오늘은 평소보단 여유있는 아침을 시작했어요. 아침시간에 정리정돈 하는 것을 무척 좋아해요.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햇빛이 방안에 가득 들어오게 하고, 빨래와 설거지를 하는 모든 정리정돈을 즐겁게 해요. 혹시 좀 의외라고 생각했나요?^^ 내가 있는 공간이 적절하게 쾌적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요! 오늘 집에 대해서 당신과 얘기 나눌까 해요.
사회주택에 오랜기간 살아온 경험이 있어요. 서울에서 산다는 게 그렇잖아요. 월세와 보증금은 너무 높은데 방은 너무 작고, 빨래를 아무리 해서 말려도 쾌쾌한 냄새가 지워지질 않고요. 원룸에 살다보면 주방과 잠자리가 구분되지 않아 절대적으로 환기가 필요한데, 바깥은 미세먼지로 가득하고 공기 순환도 어렵고요. 편안한 환경에서 살고 싶은건 사람이 가진 당연한 욕구일텐데, 그게 참 어렵죠. 그래서 열심히 열심히 공간을 찾다가 ‘사회주택’이란 것을 발견했었어요. 복지와 주거권 관련된 일과 공부를 했으니 내겐 가까운 개념이기도 했지요. 사회주택은 보통 땅을 지자체가 구입하고, 주택을 협동조합 등 비영리 단체가 지어 시세대비 80% 내외의 임대료를 세입자에게 받는 집이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사회주택 경쟁률도 높은 편이에요. 그리고 시세대비 80%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지만, 집값과 월세가 이미 비싼 서울은 ‘시세대비’라는 조건이 만만치 않아요. 아주 근본적으로는, 사회주택 숫자가 적기도 하고요. 여기서 이제 책 한 권 소개할까 해요.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 (효형출판, 최민아)>이라는 책이에요. 이 책은 저자가 7년 동안 파리에서 세입자로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경험한 ‘집없는 자의 설움’을 바탕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주거현실의 어마어마한 차이를 짚어내는 책이에요. ‘영끌’로 집을 마련했다고 해도, 평생 이자를 갚는 일에 시달려야하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평생을 세입자로서 살아도 충분하다고 해요. 주거의 권리를 기본권으로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 정책의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사회주택’ 이고요.
2년, 4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현실과 월세와 보증금 인상이 될까 임대인과 늘 긴장관계인 세입자,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를 뒤흔든 깡통전세, 전세사기 문제는 모두 안정적인 주거권 보장에 실패한 한국의 민낯일 거에요. 기후위기 시대, 안전하지 못하는 집은 침수에 시달리고 폭염과 혹한의 날씨를 막아내지 못해요. 그렇게 집 안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증가하는 추세에요. 실제로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최근 한랭질환자가 발생한 공간을 살펴보면 길가가 111명으로 가장 높지만, 주거지 주변이 67명, 주거공간이 66명으로 집과 집주변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어요. 편지치고, 설명이 좀 길었죠? 하지만 이게 한국 주거권의 현실이랍니다.
오늘은 그렇게 좋은 집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며, 높은 빌딩이 뻗어있는 공덕에서 퇴근길 인사로 하루를 마무리해요. 공덕은 원래 언덕이 많이 이름 붙여진 동네였다고 해요. 어느 순간 언덕보다 고가의 건물과 밤새도록 빛나는 간판들이 즐비하죠. 당신의 삶은 그곳에 있나요? 도시도 쉴 수 있는 사회, 누구나 괜찮은 집에서 좋은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사회가 한국에도 올까요. 오늘 내가 꾸는 꿈이, 당신에게도 닿길 바라요.
2024년 1월 31일
다섯번째 김혜미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