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6 이곳에 살기 위하여
창공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불을 만들었다.
동지가 되기 위한 불
겨울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불을.
폴 엘뤼아르의 <이곳에 살기 위하여>라는 시의 첫 대목입니다. 나는 시 읽는 것을 좋아해요. 물론 다 이해는 하지 못해요. 그럼에도 가진 시인이 가진 에너지를 시어라 부르는 낱말에 눌러담아 퍼뜨리는 힘을 느낄때 좋아요. 엘뤼아르는 자유와 사랑을 노래한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이에요.
<자유>라는 시가 대표적으로 유명하고, 한국의 여성 작가 양귀자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은 사실 엘뤼아르의 ‘모퉁이’ 라는 시에서 가져온 문장이지요. 엘뤼아르는 다작을 한 시인이기도 하지만 내가 엘뤼아르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전쟁으로 가장 암울했던 시기, 여전히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그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비애감을 떨치기 위해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렇게 가장 간절할 때, 소망하는 일이 더 강력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 있어요? 많이들 그러잖아요. 깊은 물에 빠져 본 경험이 있다면, 그때 정말 살고싶었다 하는 일 같은거요. 나는 동네에서 만나는 친구들이나 나와 비슷한 또래 친구들 한테도 자주 듣는 말이기도 해요. '계속 여기 살고 싶어. 살 수 있을까?'
며칠전 <2023 마포구 사회조사>라는 보고서가 발간 됐어요. 흥미로운 통계가 많은데,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10명 중 9명이 '마포에 계속 살고 싶다'고 응답한 것이었어요. 이 결과는 언론에도 많이 실렸더라고요. 마포 주민들의 동네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바가 담겼겠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같은 조사에서 마포 주민들의 가계지출의 절반(43%) 가까운 비율이 주거비로 사용하는 것이었어요. 이때 주거비는 월세를 내거나 이자를 상환하는 것을 뜻해요. 생활비의 반토막 가까운 돈을 오로지 집을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마포주민들이 '살고싶다'고 응답한 이유는 어쩌면 '계속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한편 마포에 있는 당인리 발전소,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내용을 다루다 보면 시민들의 건강권과 환경권을 위해 문제제기를 하다가도, '집값 하락'에서 턱 막힐때가 가끔 있어요. 우리가 당장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 건강한 땅을 밟고, 더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지낼 권리보다 어떤 시민들은 집값 걱정을 먼저하고, 또 어떤 시민들은 이곳에서 더 지내기 어려워질까 고민하죠.
이렇게 서로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얼까요. 사라지지 않고, 살아지기 위해 오늘도 애쓰는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나고요. 나에겐 계속 살고 싶다는 말이 조금은 씁쓸한 밤이네요. 우리 서로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찾을까요.
2024년 2월 7일
열번째, 김혜미레터 |